통가리로 크로싱 종단은 언제부턴가 우리 세 명의 지상과제로 남아
"얘들아,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학교에 걸어가자. 평상시에 많이 걸어나야 돼."
"오늘은 등산이다. 통가리로 가기 전에 예행 연습 해야지."
하며, 통가리로 크로싱 종단의 그 날까지 아이들을 다독이며 준비하곤 했습니다.
물론 게으름 빼면 시체인 저도 가끔씩 동네를 한 바퀴 걸어다니며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지요^^0
그리고 뉴질랜드에 와서는 이상하리만큼 워크웨이에 다니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보키씨는 트래킹 금단현상이 있는지 어제도, 오늘도 걷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우리 셋만은 떠나지지가 않아요.
워크웨이나 등산 갈 때면 항상 같이 가는 우리의 정예 등산팀과 동행해야만 의욕이 불끈~불끈 솟는답니다 ㅋ.
우리 아이들도 그런 것 같구요 ㅋㅋ.
그래서 언제 트래킹 가자는 전화가 오려나 오매불망 기다리는 보키씨ㅋㅋㅋ.
사실 통가리로 크로싱은 휴가 차 오신 도훈이 아버님이 함께 가시는 거라
우리가 가는 것이 민페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너무도 가고 싶고, 이번이 아니면 갈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그냥 따라 붙었답니다 ㅋㅋㅋ.
산도 잘 타고, 영어도 잘하고, 길도 잘 아는 언니가 루트를 짰구요^^
음식 준비는 출발 전 날 만나, 뉴월드와 아시안마켓에서 함께 골라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밥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그 비싼 햇반을 샀다지요.
NZ에서의 햇반 가격은 한국에서의 판매가격을 떠올리면
평상시엔 결코 손 떨려서 못 살 정도의 가격이랍니다.
저에게 4텀은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보낸 시기였습니다.
블로깅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구요...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다녀온지도 어느덧 석 달이 지나가는 것 같네요.
음...사전 조사도 제대로 못하고 간데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제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일단 사진의 흐름대로 고고씽 해 보아요~.
통가리로가 뉴질랜드 국립공원 1호이면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복합유산인것은 아시나요?
여름에는 우리 같은 트래킹을 하려는 사람들로, 겨울에는 스키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오르려는 산의 높이는 1961m.
뉴질랜드 지형상 고지가 1000m가 넘으면 히말라야 3000m가 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인다고 하던데요.
남성적인 매력인 물씬 풍기는 통가리로 크로싱.
그 매력 속으로 풍덩 빠져 보시죠.
위의 사진이 이 날 사진 폴더의 1번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산의 입구가 되는 셈이지요.
우리가 선택한 통가리로 크로싱은 입구와 출구가 다르므로 입산하기 전 택시를 예약해야 했습니다.
사실 버스도 있다고 하는데요.
아무리 새벽에 출발했다고는 하나, 타우랑가에서 달려간 것인지라
우리가 i-station에 달려갔을때는 이미 버스가 떠난 후였습니다.
택시 예약은 회사까지 가야합니다.
당연히 개인이 가져간 차는 그 곳에 주차하면 되구요.
버스의 단점은 반대편 목적지까지 그 시간을 맞춰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수반된다고는 합니다.
저희는 낭만적으로 산 정상 부근 hut에서 자기로 했으므로 그런 걱정은 없었습니다.
비용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숙소비보단 택시비가 더 비쌌답니다.
이 날도 아이들이 선두를 섭니다.
우리는 산 위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기에 음식과 슬리핑백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 무게가 만만치 않아 어린이와 어른 모두 강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산 초입의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합니다.
그리고 슬리핑백의 고급과 아닌 것의 차이점을 이 날 확연히 느꼈습니다.
저희 아이들 것이 더 크고, 무게가 나가면서 보온성도 다른 아이들 것보다 떨어지더라구요.
차로 이동하는 학교 캠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등에 메고 해야하는 트래킹에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초반의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황무지가 생각나는.
용암이 흘러 내리며 만들었을 이 지형 위에 푸르름이란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은.
너무나 초반부터 힘들어해서 걱정이었던 혜수.
생각보다 너무 지쳐해서 목적지까지 갈수나 있으려나 했는데
언니와 도훈이 아버님께서 혜수의 짐 일부를 더 가져가 주시면서
혜수도 일행과 비스무리하게 속도를 맞추게 되었습니다.
반면 산다람쥐 지수.
언제나 엄마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앞장 서 나가기에
오히려 제 카메라엔 지수의 사진이 담겨지기 힘듭니다.
이렇게 쉬는 타임에서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아이.
우리는 다시 걷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길 타입 ㅋ.
이런 길이라면 일곱시간은 물론 열시간도 쭈-욱 걸을 수 있습니다.
경사만 지면 맥을 못추는 보키씨는 제발 이런 길이 오래 유지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랍시고 무엇인가 교훈을 주고 싶은 보키씨는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얘들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니?"
아이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아마도 오늘 하루를 보내다보면 이 시간이 너희들이 힘들었다고 말한 그 순간보다 더 힘들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파이팅해서 걷자.
또 살면서 언젠가 힘든 순간을 만나게 되겠지.
그럴 때면 오늘의 산행을 기억하고 기운내렴."
도덕책에 나올법한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제가 사진의 저 길에서 기어이 하고야 말았답니다 ㅋㅋㅋ.
아니, 사실 고백하자면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인생의 중반 쯤을 걷고 있고
아직도 온통 숙제만 남아 있는 나의 인생.
앞으로 남은 나의 길에서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황무지 길이 나올 때
그 날의 트래킹을 생각하며
끝도 없을 것 같은 황무지 길을 가다, 가다 보면
에메랄드 빛 호수를 만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럴 것이라고.
아무리 힘들고, 고된 길이 펼쳐져도 감내하고 가다보면
시원한 바람과 물이 나타나 우리의 땀을 식혀 줄 것이라고.
그리고 교훈을 강요하는 영화가 얼마나 촌스러운건지 잘 알면서도
세련된 테크닉을 구사하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직설법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학문의 탐구가 아닌, 성적을 위한 공부로 보낼 5~6년.
그 스트레스로 엇나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는 날이 있다면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아.
그 날의 말로 형용할 수 없었던 눈부신 블루빛 호수를 떠올리며
건강하게 그 시기를 잘 견뎌내 주기를
단지 몇 년 앞서 살고 있는 인생의 선배로서
말해 주고 싶구나.
"얘들아,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학교에 걸어가자. 평상시에 많이 걸어나야 돼."
"오늘은 등산이다. 통가리로 가기 전에 예행 연습 해야지."
하며, 통가리로 크로싱 종단의 그 날까지 아이들을 다독이며 준비하곤 했습니다.
물론 게으름 빼면 시체인 저도 가끔씩 동네를 한 바퀴 걸어다니며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지요^^0
그리고 뉴질랜드에 와서는 이상하리만큼 워크웨이에 다니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보키씨는 트래킹 금단현상이 있는지 어제도, 오늘도 걷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우리 셋만은 떠나지지가 않아요.
워크웨이나 등산 갈 때면 항상 같이 가는 우리의 정예 등산팀과 동행해야만 의욕이 불끈~불끈 솟는답니다 ㅋ.
우리 아이들도 그런 것 같구요 ㅋㅋ.
그래서 언제 트래킹 가자는 전화가 오려나 오매불망 기다리는 보키씨ㅋㅋㅋ.
사실 통가리로 크로싱은 휴가 차 오신 도훈이 아버님이 함께 가시는 거라
우리가 가는 것이 민페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너무도 가고 싶고, 이번이 아니면 갈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그냥 따라 붙었답니다 ㅋㅋㅋ.
산도 잘 타고, 영어도 잘하고, 길도 잘 아는 언니가 루트를 짰구요^^
음식 준비는 출발 전 날 만나, 뉴월드와 아시안마켓에서 함께 골라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밥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그 비싼 햇반을 샀다지요.
NZ에서의 햇반 가격은 한국에서의 판매가격을 떠올리면
평상시엔 결코 손 떨려서 못 살 정도의 가격이랍니다.
저에게 4텀은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보낸 시기였습니다.
블로깅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구요...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다녀온지도 어느덧 석 달이 지나가는 것 같네요.
음...사전 조사도 제대로 못하고 간데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제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일단 사진의 흐름대로 고고씽 해 보아요~.
통가리로가 뉴질랜드 국립공원 1호이면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복합유산인것은 아시나요?
여름에는 우리 같은 트래킹을 하려는 사람들로, 겨울에는 스키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오르려는 산의 높이는 1961m.
뉴질랜드 지형상 고지가 1000m가 넘으면 히말라야 3000m가 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인다고 하던데요.
남성적인 매력인 물씬 풍기는 통가리로 크로싱.
그 매력 속으로 풍덩 빠져 보시죠.
위의 사진이 이 날 사진 폴더의 1번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산의 입구가 되는 셈이지요.
우리가 선택한 통가리로 크로싱은 입구와 출구가 다르므로 입산하기 전 택시를 예약해야 했습니다.
사실 버스도 있다고 하는데요.
아무리 새벽에 출발했다고는 하나, 타우랑가에서 달려간 것인지라
우리가 i-station에 달려갔을때는 이미 버스가 떠난 후였습니다.
택시 예약은 회사까지 가야합니다.
당연히 개인이 가져간 차는 그 곳에 주차하면 되구요.
버스의 단점은 반대편 목적지까지 그 시간을 맞춰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수반된다고는 합니다.
저희는 낭만적으로 산 정상 부근 hut에서 자기로 했으므로 그런 걱정은 없었습니다.
비용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숙소비보단 택시비가 더 비쌌답니다.
이 날도 아이들이 선두를 섭니다.
우리는 산 위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기에 음식과 슬리핑백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 무게가 만만치 않아 어린이와 어른 모두 강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산 초입의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합니다.
그리고 슬리핑백의 고급과 아닌 것의 차이점을 이 날 확연히 느꼈습니다.
저희 아이들 것이 더 크고, 무게가 나가면서 보온성도 다른 아이들 것보다 떨어지더라구요.
차로 이동하는 학교 캠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등에 메고 해야하는 트래킹에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초반의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황무지가 생각나는.
용암이 흘러 내리며 만들었을 이 지형 위에 푸르름이란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은.
우리는 생각보다 금방 지쳐갔고,
가는 내내 자주 쉬어가야 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먼저 쉬고 있었고, 저는 그 장소에 다다르면 가방부터 집어 던지고
철퍼덕 앉아 버리곤 했습니다.
가는 내내 자주 쉬어가야 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먼저 쉬고 있었고, 저는 그 장소에 다다르면 가방부터 집어 던지고
철퍼덕 앉아 버리곤 했습니다.
너무나 초반부터 힘들어해서 걱정이었던 혜수.
생각보다 너무 지쳐해서 목적지까지 갈수나 있으려나 했는데
언니와 도훈이 아버님께서 혜수의 짐 일부를 더 가져가 주시면서
혜수도 일행과 비스무리하게 속도를 맞추게 되었습니다.
반면 산다람쥐 지수.
언제나 엄마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앞장 서 나가기에
오히려 제 카메라엔 지수의 사진이 담겨지기 힘듭니다.
이렇게 쉬는 타임에서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아이.
우리는 다시 걷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길 타입 ㅋ.
이런 길이라면 일곱시간은 물론 열시간도 쭈-욱 걸을 수 있습니다.
경사만 지면 맥을 못추는 보키씨는 제발 이런 길이 오래 유지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랍시고 무엇인가 교훈을 주고 싶은 보키씨는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얘들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니?"
아이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아마도 오늘 하루를 보내다보면 이 시간이 너희들이 힘들었다고 말한 그 순간보다 더 힘들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파이팅해서 걷자.
또 살면서 언젠가 힘든 순간을 만나게 되겠지.
그럴 때면 오늘의 산행을 기억하고 기운내렴."
도덕책에 나올법한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제가 사진의 저 길에서 기어이 하고야 말았답니다 ㅋㅋㅋ.
아니, 사실 고백하자면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인생의 중반 쯤을 걷고 있고
아직도 온통 숙제만 남아 있는 나의 인생.
앞으로 남은 나의 길에서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황무지 길이 나올 때
그 날의 트래킹을 생각하며
끝도 없을 것 같은 황무지 길을 가다, 가다 보면
에메랄드 빛 호수를 만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럴 것이라고.
아무리 힘들고, 고된 길이 펼쳐져도 감내하고 가다보면
시원한 바람과 물이 나타나 우리의 땀을 식혀 줄 것이라고.
그리고 교훈을 강요하는 영화가 얼마나 촌스러운건지 잘 알면서도
세련된 테크닉을 구사하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직설법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학문의 탐구가 아닌, 성적을 위한 공부로 보낼 5~6년.
그 스트레스로 엇나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는 날이 있다면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아.
그 날의 말로 형용할 수 없었던 눈부신 블루빛 호수를 떠올리며
건강하게 그 시기를 잘 견뎌내 주기를
단지 몇 년 앞서 살고 있는 인생의 선배로서
말해 주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