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가까워지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그 전엔 나의 두 발과 바로 코 앞의 길만 바라보며 걸었다면 이젠 조금씩 길가의 풍경도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의 갈대밭을 연상시키는 빛깔입니다.
5분만 걸어도 어질어질 현기증이 나고, 참을 수 없는 허기짐에 헐떡이던 보키씨는
어른으로서의 체면도 던져버리고, 초콜릿을 얻어먹으려고 저 무리에 껴 있습니다ㅋㅋ~.
드디어 우리가 하룻밤을 보낼 Hut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연 속에 푹 파묻혀 있는 아담한 숙소의 지붕을 보는 순간
어린 날의 동화책에서 본, 따뜻하고 정감어린 어머니가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내 마음도 덩달아 훈훈해집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단박에 도착할 거리인 것 같은데도
길이 직선거리가 아닌, 지그재그로 나 있어 숙소까지 걷는데도 한참이 걸립니다.
그래도 풍경이 나름 운치가 있는지라 지루하지 않게 걸어내려 갑니다.
Hut 의 정면입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한 커플이 짐을 풀고 쉬고 있었습니다.
왼쪽편으로 보이는 창문방이었는데요.
밖에서 방 안의 모습이 여과없이 보인다는 단점은 있지만 침대에 누워서 보았을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과 붉게 물들며 다가올 새벽을 다 맛보았겠구나 생각하니 많이 부럽더라구요.
커플이 먼저 누워있었던 작은 방 하나,
우리팀이 머물렀던 8인용 침대가 마련되어 있던 큰(?) 방 하나,
그리고 간단히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부엌 겸 다이닝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오픈된 공간에도 침대들이 여러개 놓여 있습니다.
사실 침대수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닌데도 예약이 필수가 아니라고 하니,
크로싱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일코스로 트래킹을 하는 듯 합니다.
이 방이 우리가 묵었던 방입니다.
아이들 4명은 2층에서, 어른들은 1층에서 잠을 잤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자기들의 가방 안에 있던 온갖 간식들을 선반 위에 진열해 놓은 것 좀 보셔요.
2층 침대 위는 다락방 같은 분위기여서 그런지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올 생각을 안했답니다.
햇반과 반찬으로는 스팸, 김, 고추장, 번데기가 전부였지만
밥을 먹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저녁식사였습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맛, '처음처럼'
이곳에선 소주가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100년에 한 번 소주 맛을 볼 때면
'소주가 참 달다' 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ㅋ.
양치질만 간신히 하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아이들의 귀여운 수다도 들었고,
도훈이의 재미있는 노래소리도 들었고,
언니의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도 다 들었습니다만
침대에 눕는 순간, 저의 몸은 얼음이 되어 말을 듣질 않습니다.
눈도, 입도 열리지가 않습니다.
추위때문에 간간이 잠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편안하게 잘 잤답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밤은 흘러갔습니다.
이런 풍경을 볼 때 저도 멋진 카메라가 탐이 나곤합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목격한 '운해'.
솔직히 고백하건데, 저는 '운해' 라는 단어도 그 날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에서 서둘러 빠져나온 저는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내가 구름 위에 서 있는 영화같은 상황.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아! 침낭과 식량으로 어깨가 빠질 듯 아팠지만
그 덕에 Hut에서 잠을 자는 낭만도 즐겼고,
내 생애 잊을 수 없을, 멋진 광경을 가슴 속에 담았으니
하루동안의 힘듦은 하룻밤 사이에
참을 수 있는 만큼의 고단함으로 바뀌고
다음번엔 또 어디로 떠나볼까? 로 마음이 바뀝니다.
정말이지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훌륭하여 저 자신도 깜짝 놀랐답니다.
떠나기 직전, 아쉬운 마음에 단체사진도 찍어봅니다.
다들 해냈다는 마음에 이 뿌듯하고 밝은 표정을 보십시오~.
저희 세 명 사진 속에서 보라색 머리띠를 하고 있는 여성이
이 숙소를 지키는 자원봉사자 입니다.
아침마다 숙소에 들려 예약을 안하고 잠을 잔 여행객들에게
비용을 수거해 갑니다.
아직 앳띤 얼굴이어서, 거기다 여린 여성이어서 인상깊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예약한 택시 시간에 맞춰 하산하기 위해
부지런히 걷습니다.
도훈이의 '트와이라잇' 놀이.
영화 메이킹 필름을 보았더니, 이 장면은 와이어를 사용하여 촬영되었더군요.
엄청난 N.G 와 함께 말입니다.
두 녀석은 어느새 또 앞질러 나가있고...
멀리선 본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불렀습니다.
두 분이 오붓하게 내려오시라고 제가 좀 빨리 걸었습니다 ㅎ~.
아직 활화산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뉴질랜드의 지열지대를 다니다보면,
사실은 이곳이 좀 위험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밑으로 내려오다보니 연두빛 잎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 만난 이 푸르름이 얼마나 싱그럽게 느껴지는지.
저는 워낙 연두색과 하늘색을 좋아하거든요!
흔하디 흔한 나무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은
크로싱을 마친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일겁니다.
귀가 시원해지는 소리
듣다보면 마음까지 시-원해 집니다.
이제 출구가 가까워집니다.
유독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맨 왼쪽에 있는 간판은 헤저드 안내입니다.
무시무시하죠?^^;
이제 몇 걸음만 걸으면 주차장입니다.
혜수는 너무너무 신나나 봅니다.
무사귀환했으니 또 사진 한 방 박아야지요!
정말 자랑스러운 그리고 사랑스러운 네 명의 어린이입니다.
아니 이젠 청소년이라고 해야하나요? ㅋ
파이팅을 외치며!!
택시를 기다리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혜수가 읽고 있는 저 책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답니다.
유독 무거워 하던 혜수의 가방을 언니가 열어보았더니 책 한권이 나오더랍니다.
언니가 들어주려고 책을 꺼냈고 한참을 들다가 제가 가지고 왔는데요..
트래킹 도중 잃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숙소에 도착하고, 그 후에 숙소에 잠시 쉬려고 들렀던 청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신라이야기'를 건네며 너희책인 것 같다고 건네주는 겁니다.
그 넓디 넓은 통가리로에서 잃어버린 책 한권을 다시 찾다니...
문득 '세런디피티'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벼룩시장에서 $1 주고 산 책이라 당연히 하찮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책은 한국으로 들고 가야 하는건가, 잠시 고민도 했더랬습니다^^
혜수가 독서를 하는 동안
도훈이와 지수는 먼지를 일으키며 칼싸움을 하네요.
누가 이겼을까요?
결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다칠까봐 걱정이 되었던 어른들이 중단을 시켰거든요.
이상 통가리로 크로싱 이야기를 마칩니다.
통가리로 크로싱 이야기 3,4편을 올리는데
보키씨는자그마치 10GB를 다 써버리고 말았답니다.
정말 내가 다 쓴 것이 맞을까? 의심하며 인터넷 회사에 확인 전화도 했다지요.
동일한 아이피로 이틀 동안 10GB 가까이 사용했다고 친절히 알려주더군요.
그 후 새로운 용량이 부과되는 17일 동안 컴퓨터를 켜면 안되겠구나 했는데
혜수가 학교 숙제 한다고 인터넷을 사용하며 정해진 용량을 넘어버린 까닭에
저는 2GB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추가비용 $10을 내야하구요.
비용이 아까우면서도 은근히 또 기분이 좋았다는 보키씨.
인터넷을 금지당하는(물론 비용 때문에 스스로 금지하는 것이긴 하지만요)
그 기간 동안 얼마나 갑갑하던지요.
오늘 통가리로 크로싱편을 블로깅하다보니
또 길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하지만 당분간은 쌍둥이의 학습을 위하여
외출을 자제하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지금도 그들은 '묻지마 수학'을 공부하고 있답니다.
중1 수학을 독학하면서 물어볼 곳도 없어
스스로 머리를 쥐어짜며 해답을 구하고 있는 중입니다.